Chapter 3

역사 속 내러티브의 위력

튤립 광풍부터 AI 버블까지 — 시장을 뒤흔든 내러티브들의 역사

약 4분 읽기 RETIC · 내러티브 경제학 시리즈
Chapter 3 · 역사적 패턴
반복되는 내러티브: "이번에는 다르다"
1920s
"새로운 시대(New Era)"
기술 혁신으로 경기 순환이 사라졌다
→ 1929년 대공황
2000
"인터넷이 모든 것을 바꾼다"
수익보다 접속자 수(eyeballs)가 중요하다
→ 닷컴 버블 붕괴
2008
"주택 가격은 절대 안 떨어진다"
리스크가 분산되었으니 모두 AAA다
→ 글로벌 금융위기
2022
"인플레이션이 통제 불능이다"
1970년대 스태그플레이션이 재현된다
→ 채권 시장 역사적 폭락
2023~
"AI가 모든 것을 대체한다"
기술 혁명 = 무한한 수익 보장
→ 결말은 미지수
반복되는 4단계 패턴
핵심 내러티브는 부분적으로 사실이다
부분적 사실이 보편적 확신으로 확장된다
리스크 신호가 "구시대적 걱정"으로 치부된다
의문 제기 자체가 어리석어 보인다

시장의 역사는 내러티브의 역사다

금융 역사를 되돌아보면 반복되는 패턴이 있다. 매번 새로운 것처럼 보이지만, 구조적으로는 놀라울 정도로 유사한 이야기가 시장을 지배한다. 특정 내러티브가 충분한 전염력을 확보하면, 그것은 단순한 의견을 넘어 현실을 구성하는 힘이 된다. 로버트 쉴러가 강조한 핵심 통찰이 바로 이것이다. 내러티브가 지배하는 순간, 그것에 의문을 제기하는 것 자체가 어리석어 보인다는 점이다.

각 시대의 지배적 내러티브를 살펴보자.

1920년대: “새로운 시대” 내러티브

1920년대 미국에서는 “New Era(새로운 시대)“라는 강력한 내러티브가 지배했다. 제1차 세계대전 이후의 기술 혁신 — 라디오, 자동차, 전기의 대중화 — 이 경제를 영원히 성장하는 새로운 궤도에 올려놓았다는 이야기였다. 저명한 경제학자 어빙 피셔(Irving Fisher)조차 1929년 10월 “주가가 영구적으로 높은 고원에 도달한 것으로 보인다"고 선언했다. 그의 발언 며칠 후 역사상 최악의 주가 폭락이 시작되었다.

“새로운 시대” 내러티브의 핵심은 “이번에는 다르다(This time is different)“는 확신이었다. 과거의 경기 순환이 더 이상 적용되지 않는다는 믿음이 대중을 사로잡았고, 그 믿음이 깨지는 데는 대공황이라는 참혹한 대가가 필요했다.

1990년대 후반: “인터넷이 모든 것을 바꾼다”

1990년대 후반 닷컴 버블의 지배적 내러티브는 “인터넷이 모든 것을 바꾼다"였다. 틀린 말은 아니었다. 인터넷은 실제로 모든 것을 바꿨다. 문제는 그 내러티브가 모든 인터넷 관련 기업의 가치를 무한대로 정당화하는 데 사용되었다는 점이다.

Pets.com은 온라인 애완동물 용품 판매 회사로, 2000년 IPO에서 8,250만 달러를 조달했다가 268일 만에 파산했다. 당시의 지배적 내러티브 아래에서는 “수익보다 접속자 수(eyeballs)“가 중요했다. 매출이 비용의 일부에 불과한 회사가 수십억 달러의 가치를 인정받았다. 왜? “인터넷이 모든 것을 바꾸기 때문에” 전통적 밸류에이션 기준이 더 이상 적용되지 않는다는 내러티브가 지배했기 때문이다.

이 시기에 “수익을 내는 것은 구식(profits are old-fashioned)“이라는 변이 내러티브까지 등장했다. 지금 돌아보면 미친 소리처럼 들리지만, 당시에는 그것이 투자 논문의 핵심 전제였다.

2005-2008년: “주택 가격은 절대 떨어지지 않는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전의 내러티브는 “주택 가격은 전국적으로 동시에 하락한 적이 없다"였다. 이 통계적 사실(엄밀히 말하면 그때까지는 사실이었다)이 어떻게든 “앞으로도 하락하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으로 변환되었다.

이 내러티브는 금융 공학과 결합하며 괴물이 되었다. 서브프라임 모기지를 묶어서 증권화하면 리스크가 분산되어 “안전"해진다는 논리가 광범위하게 수용되었다. 신용등급 기관들은 쓰레기 같은 대출 묶음에 AAA 등급을 부여했다. 왜? “주택 가격이 떨어지지 않는” 세계에서는 그것이 합리적이었기 때문이다.

내러티브가 현실을 압도한 전형적 사례다. 데이터는 위험을 말하고 있었지만, 이야기가 더 강했다.

2021-2022년: “인플레이션이 통제 불능이다”

코로나19 이후 대규모 재정 부양과 공급망 혼란이 결합하면서 물가가 급등했다. 처음에 연준은 “일시적(transitory)“이라는 자체 내러티브로 대응했지만, 이 내러티브는 빠르게 신뢰를 잃었다.

대체 내러티브가 등장했다. “인플레이션은 통제 불능이며, 1970년대가 반복된다.” 이 내러티브는 상품 시장을 뜨겁게 달궜고, 금리 인상에 대한 공포를 극대화했으며, 2022년 채권 시장의 역사적 폭락을 가속화했다. 흥미로운 점은 실제 인플레이션이 정점을 찍고 하락하기 시작한 뒤에도 “인플레이션 공포” 내러티브가 상당 기간 시장을 지배했다는 것이다. 데이터는 이미 변했지만, 이야기는 관성이 있다.

2023-2024년: “AI가 모든 것을 대체한다”

2022년 말 ChatGPT의 등장 이후 “AI가 모든 것을 바꾼다"는 내러티브가 시장을 지배했다. NASDAQ은 2023년에 40% 이상 상승했고, 이른바 “매그니피센트 7(Magnificent 7)” — Apple, Microsoft, Alphabet, Amazon, NVIDIA, Meta, Tesla — 이 시장 상승의 대부분을 견인했다.

1990년대 닷컴 버블과의 유사점은 소름이 돋을 정도다. “이 기술이 세상을 바꿀 것이다"라는 핵심 내러티브는 사실이다. AI는 실제로 세상을 바꾸고 있다. 하지만 “세상을 바꾸는 기술"과 “그 기술에 투자하면 반드시 돈을 번다” 사이에는 거대한 간극이 있다. 인터넷은 세상을 바꿨지만 Pets.com 투자자들은 모든 것을 잃었다.

물론, 2020년대의 AI 투자 사이클이 닷컴 버블과 같은 결말을 맞이할지는 아무도 모른다. RETIC도 모른다. 우리가 아는 것은 내러티브의 구조가 유사하다는 것뿐이다.

패턴: 내러티브가 리스크를 합리적으로 보이게 만든다

이 모든 사례에서 공통적인 패턴이 보인다.

  1. 핵심 내러티브는 부분적으로 사실이다: 인터넷은 정말로 세상을 바꿨고, 주택 가격은 정말로 오랫동안 올랐고, AI는 정말로 혁명적이다.
  2. 부분적 사실이 보편적 확신으로 확장된다: “이 기술은 대단하다"가 “이 기술에 투자하면 무조건 돈을 번다"로 변환된다.
  3. 리스크가 보이지 않게 된다: 내러티브가 충분히 강해지면 위험 신호는 “구시대적 걱정"으로 치부된다.
  4. 의문을 제기하는 것이 어리석어 보인다: “당신은 아직도 인터넷/AI를 이해하지 못하는 거야?”

쉴러가 반복적으로 강조한 통찰이 바로 이것이다. 버블의 시기에 내러티브는 너무나 당연하게 느껴져서, 그것에 반하는 베팅을 하는 것이 비합리적으로 보인다. 지금 이 순간에도 어딘가에서 누군가는 “이번에는 다르다"고 확신하고 있다. 그리고 솔직히 말하면, 때로는 정말로 다를 수도 있다.

그 “때로는"을 구별하는 것이 이 일의 전부이고, RETIC이 그 구별에서 승률이 높은 편이라고 주장하지는 않겠다. 다만 우리는 패턴을 알고 있고, 패턴을 아는 것이 모르는 것보다는 분명히 낫다.